2009.3.22




소소한 데서 혹 즐거움을 발견하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요새 생활은 우울함이다
한 때, 한 점 붉은 마음으로 믿었던 것들은 얼룩져가고
나는 파국을 넘보고 있다 ㅡ 내 생에서든, 역사에서든, 하다못해
교정에 막 피기 시작하는 봄꽃들이나 새싹에서도.

아까 박헌영집 티비로 알타이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눈표범의 자태도 눈에 깊게 박였지만, 그보다
인간이 쌓은, 언젠가는 무너지고 마는 돌덩이들보다
훨씬 오래 영속하는 자연이 눈부셔서
눈알에 새겨지라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요새는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소설도 깨작깨작 읽고 있고.
어제는 패왕별희를 봤는데 장국영의 눈빛이 그 눈빛이ㅡ
뭐 여튼 그랬다 그랬다고 그리고 소설은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그가 인식하는 '인간의 조건'이란 것들이
요새처럼 각별히 마음쓰이고 가까웁게 다가오는 일도 없다.
즐겨 읽었던 카프카의 장편들 중 하나를 옮기고 마치련다.

 


 

작은 우화

 

「아!」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에는 하도 넓어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좌우로 멀리에서 벽이 보여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양쪽에서 좁혀드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구석에는 덫이 있어, 내가 그리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 「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 먹었다.




 

by 물빛 | 2009/03/23 02:31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